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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삭제’에서 찾은 창조성: 미술과 미니멀리즘의 공통점 탐구

나는 요즘 ‘삭제’라는 단어에 유난히 끌린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매일 수많은 이미지를 저장하고,
미술에서는 수없이 선을 더하며 완성도를 높이려 한다.
하지만 정작 창조의 본질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불필요한 앱을 지우는 일이라면,
미술의 미니멀리즘은 불필요한 선과 색을 지우는 일과 같은 것 이다.
나는 이 두 ‘삭제의 행위’ 속에서 창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과 사고방식에 어떤 통찰을 주는지를 탐구해보았다.

 

‘삭제’에서 찾은 창조성


1. 미술에서 ‘삭제’가 창조가 되는 순간

미술의 역사는 ‘덧붙이기’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우기’의 역사이기도 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밑그림을 보면, 수없이 지워진 선들이 남아 있다.
그 흔적들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탐색의 기록이다.

특히 현대 미술에서 ‘삭제’는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예를 들어, 화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는 캔버스를 칼로 찢는 행위로 예술의 경계를 재정의했다.
그는 “파괴를 통해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고 말했다.
즉, ‘없앰’이 곧 ‘창조’였다.

또한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에서도
과감한 단순화와 색의 최소화는 복잡한 감정을 더욱 깊게 전달한다.
그의 화면은 단순하지만, 관람자는 그 안에서 끝없는 공간감을 느낀다.
이처럼 미술 속 ‘삭제’는 단순한 제거가 아니라, 본질만 남기는 정제의 과정이다.


2.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삭제’는 사고의 정리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앱을 삭제하거나 SNS를 끊는 행동으로만 보이지만,
그 핵심은 정보의 과잉 속에서 선택의 집중을 회복하는 일이다.

정보가 너무 많을수록 인간의 집중력은 약해진다.
2024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디지털 과부하를 겪는 사람의 생산성은 40% 이상 감소한다고 한다.
이때 ‘삭제’는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두뇌의 여백을 회복시키는 작업이다.

나는 최근 스마트폰에서 사진 2천 장과 앱 30개를 정리했다.
처음엔 허전했지만, 그 후로 작업 집중력이 확실히 달라졌다.
머릿속의 화면이 단순해지자 생각의 구조가 명확해졌다.
미술에서 불필요한 선을 지우듯,
디지털에서도 불필요한 정보는 창의성을 가로막는다.


 3. ‘삭제’의 철학 — 일본 미학 ‘간소(簡素)’와 서양의 미니멀리즘

‘삭제’의 미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 일본의 ‘와비사비(wabi-sabi)’와 ‘간소’ 철학
    불완전함과 여백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차도(茶道)나 일본화에서는 공간의 비움이 예술의 중심이 된다.
  • **서양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1960년대 뉴욕에서 시작된 예술 운동으로,
    “Less is More(적을수록 더 많다)”라는 문장으로 정의된다.
    이는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말이기도 하다.

두 철학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출발했지만,
모두 ‘삭제를 통한 본질의 발견’이라는 같은 목적을 향한다.
즉,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집중의 다른 형태인 것이다.


 4. 창작자에게 ‘삭제’가 필요한 이유

많은 창작자들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계속 덧붙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덧붙임이 많을수록 핵심이 흐려진다.
나는 미술 작업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자주 했다.

처음에는 디테일을 채우는 것이 예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그림이 복잡할수록 나의 의도가 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붓을 멈추고, 남긴 여백을 관찰했다.
그때 비로소 진짜 ‘균형’이 만들어졌다.

‘삭제’는 단순한 줄이기가 아니라 의도의 강화다.
무엇을 없애느냐보다 무엇을 남기느냐가 예술을 결정한다.
디지털에서도 마찬가지다.
앱을 지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진짜 나에게 필요한 집중의 공간을 남기는 것이 인생을 완성해 가는 목적이다.


5. 삭제를 통한 창의성의 복귀 — 심리학적 근거

심리학에서도 ‘감각 과잉’은 창의성을 저해한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자극을 줄이고 단조로운 환경에 있을 때 인간의 상상력이 30% 이상 증가한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뇌는 자극이 적을수록 상상의 여백을 스스로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미술가가 여백을 남길 때 관람자가 상상하게 되는 원리와 같다.
즉, 비움은 참여를 만든다.

그래서 진정한 창조성은 풍부한 도구나 화려한 환경에서가 아니라,
적은 자극 속에서 깨어난다.
‘삭제’는 창작자에게 상상할 공간을 주는 ‘의도된 빈 공간’이다.


 6. 나의 실천 — 삭제를 통한 생각의 정리

나는 매주 일요일, ‘삭제의 날’을 만든다.
이날은 디지털 파일뿐 아니라, 머릿속 생각도 함께 정리한다.
한 주 동안 떠올랐던 아이디어 중 필요한 것만 노트에 옮기고,
미완의 스케치를 일부러 찢기도 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물리적인 정리가 아니라 정신의 정리다.
쓸데없는 것들을 없애면 남은 것들이 또렷해진다.
그리고 그 남은 것들이 결국 새로운 창작의 씨앗이 된다.


 결론 — 비움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창조성

‘삭제’는 잃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여백 만들기다.
미술에서는 불필요한 선을 지우며 형태의 본질을 찾고,
디지털에서는 불필요한 정보와 자극을 지우며 사고의 본질을 찾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추가’를 통해 창조를 정의하지 않는다.
진짜 창조는 덜어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완벽함은 더함이 아니라, 불필요함의 제거 속에서 완성된다.
화면을 비우고,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면
그때서야 진짜 디지털 세상에서 보이지 않던 창조의 씨앗이 보이기 시작한다.